인생에서 가장 버려야 할 것.
세상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내게 도움이 되었던 적이 없던 그것.
내가 35년을 살아가면서 유일하게 하나를 버릴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위해 평생을 노력했던 것.
바로 자존심이다.
나는 30년을 살아오면서 자존심을 버리기 위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성격은 남들에 비해 쌘 편이고, 게다가 자기 관리가 정말 끝판왕일 정도로 한 번 강박을 가지면 쉽게 놓지 못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갖고 태어나기를 기질이 예민한 편에 속해 누군가가 터치하거나, 내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불허했다. 왜냐하면 뭔가 제한을 받는다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집까지 쌨으니 정말 안 봐도 비디오다.
그런데도 이런 성향을 가진 것보다 자존심을 버리고 싶었던 이유는, 내 자존심은 언제나 나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나를 깔보는 사람들, 무시하는 사람들, 나를 폄하하는 지인 및 친구들 그리고 가족까지 모두 다 한 번쯤은 무시받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를 통해 배운 것이 항상 내가 그 집단이나 무리에서 도망가려고 했다. 왜냐하면 단순히 내가 그들에게 그러한 말을 듣는 게 용납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누구든, 누가 됐든, 타인을 배려하면서 살면 해결될 일이지만 인간이라는 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늦게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또 다른 인간들에게 그렇게 강압적이고,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선택을 내린다. 왜냐하면 굴러가는 마차의 바퀴에 선 개미를 일일이 피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됐든 희생이 따른다는 것이다. 근데 우리는 개미를 피해 가고자 이러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좀 더 살갑고, 배려있는 삶이 마차의 바퀴와는 비교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국 망각을 하고 같은 비유에 이르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자존심을 내려놔야 할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무리에서 배제되고, 그 순간을 버티지 못하면 우리는 도태된다. 외로움이 강한 인간은 결코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하고 다시 사회로 나와 무리를 찾아 나선다. 이것이야 말로 인간의 DNA는 정말 속된 말로 X 같다.
살면서 화(火)와 자존심은 단 한순간도 내게 도움이 됐던 적이 없고, 늘 화근이 되어 돌아왔다. 어릴 때부터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이 자존심이었고, 남자들에게는 마지막 자존심이라는 게 있는데, 이조차도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이 들면 인생에서 회의감이 들정도로 인생이 피폐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집 밖을 나오면 늘 자존심을 집에 두고 나오려고 노력하지만 쉽게 되지 않는다. 솔직히 이 부분만 잘 돼도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무리는 없다. 차라리 집에 가서 저주를 하고 술을 마시며 잊는 법을 배우는 것 오히려 다행일 정도니까.
처음에는 여성분들이 쉴 새 없이 험담을 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사람들은 전부 다 다른데, 뭔가 나를 자신들에게 맞추게 하려는 그 모습을 보며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특히나 자존심은 남성들보다 여성들에게 더 많이 보였고, 그 부분에서 여성들은 늘 보이지 않는 싸움이 잦다.
자존심은 무의식적으로도 늘 타인에게 해가 된다.
정말 중요한 건 자존심이라는 것 이면에는 늘 기회가 도사리고 있다. 자존심을 한 번 부리고, 무리에서 뭔가 입장을 드러내는 순간 그 기회는 다른 사람에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지혜를 얻기에는 20대는 너무 어리고 젊고 그리고 30대가 되어도 깨닫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다고 불혹이든 지천명이든 모두가 깨닫는다는 법도 없다. 이건 나이 불문이고 얼마나 실패라는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회는 생각보다 자주 찾아온다. 그러나 한 번의 기회가 두 번으로 늘어나는 기회는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그건 천운을 타고나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한 번 실패한 사업에서 한 번의 기회를 얻어 다시 성공했지만 다시 쓰러진 사업이 무너져 내리면 두 번의 기회를 얻어 다시 회사를 세우기까지는, 정말 천운이 아니고서야는 힘들다. 운이 좋고 기회가 많은 사람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자신의 운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왜냐하면 그런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고, 그런 사람들일수록 거만해질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모든 기준은 자신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타인과 자신의 격차를 보이고 바로 이 부분이 자존감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자존감과 자존심은 한 끗 차이다. 나중에 일을 그르칠 때는 저 자존감이 자존심으로 변질돼 주변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존감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지난날의 일들이 과오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존심은 화로 이어진다.
누군가 나의 자존심을 건들면 곧장 화로 이어지는 게 사람이다. 그래서 화를 잘 다스리는 사람일수록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드물다. 그만큼 인간에게 자존심은 정말 중요한 건데, 나도 막상 자존심을 긁는 행동을 하면 쉽게 넘어갈 수 없다. 바로 나를 지키려는 보호본능이 심장에서 꿈틀거리고, 뇌가 나를 지키라며 강한 행동을 보인다. 동물이면 하악질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에게는 스트레스와 같은 성질이 띠는데 요즘은 운동과 같은 방법으로 풀지만 과거에는 무기가 들려 있다면 그 사람을 죽였을 것이다. 그래서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자존심을 긁는 일을 하지 않은 게 좋다. 왜냐하면 자존심을 긁었다간, 친구들이 하는 보복과는 달리 강한 보복이 이어질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강약약강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이에 지지 않는 사람들이 간혹 있고, 나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을 이겨먹거나 죽음을 면치 못하거나 둘 중 하난데, 대부분 후자에 속한다. 전자는 정말 똑똑하다거나 천재적인 재능이 있지 않는 한 무식한 권력자 하나 끌어내리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를 잘 다스릴수록 자존심과 등을 질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은 절대 자존심과 등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이 범위는 결코 쉽지 않고, 정작 자존심을 버텼다 하더라도 스트레스와 화는 그다음의 문제고, 스트레스가 지속될수록 인간은 엄청난 리스크를 짊어지게 된다. (화를 안 낼 땐, 화병과 같은 심적 변화라던가, 아니면 탈모와 같은 물리적 변화라던가) 몸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두 가지를 내려놓아야 하는 것 같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 자존심을, 타인을 만나는 조직(회사)과 같은 공간에 갈 때는 화를 내려놓는 방법을 말이다.
이제 자존심을 내려놓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어느 부분에서 자존심을 상한지 먼저 알아야 한다. 그래야 자존심을 내려놓는 방법을 찾지 않겠는가.
"넌 왜 이렇게 일을 못해?"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대부분 자존심을 상할 것이다.
그러면 아침부터 머릿속에 되새기면 된다.
"사람이 어떻게 처음부터 일을 잘해? 어떻게 사람이 완벽할 수 있겠어? 나한테 관대해지자."라고 최면을 거는 것이다. 이런 방법이 왜 도움이 되냐면, 우리는 자존심이 상한다던가 자신의 흠과 마주치지 않고 싶어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익숙해지지 않으니까 자존심이 상하는 부분에 대해서 굉장한 방어기제를 띤다. 자신과의 자존심과 직면하기 시작한다면 대부분 간단한 호흡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질 수 있다.
화를 참는 건 굉장히 힘들다.
화는 한 번은 누구나 참을 수 있다. 그런데 화는 젠가처럼 쌓이는 것이다. 하나둘씩 쌓인 젠가의 중간중간 뻥뻥 뚫린 구멍을 메꿔야 하는데, 계속해서 스트레스가 젠가를 하나씩 제거한다. 결국 아슬아슬한 젠가는 언젠가는 와르르 무너지기 마련이다. 화는, 스트레스를 조절할 줄 알아야 하는데, 스트레스를 좀처럼 조절하기는 쉽지 않다.
솔직히 운동을 사시사철 거진 매일 한다고 하는 나도 솔직히 운동이 스트레스와 화를 가라앉혀준다고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왜냐하면 매일 운동하는 나도 매번 화는 나니까 말이다.
스트레스는 정말 쥐약이다. 엉망이 된 뇌를 효과적으로 바꿔야 하는데 한순간에 바뀌기라는 건 쉽지 않다. 스트레스도 어쩌면 뇌가 겪는 엄청난 고통인데, 우리는 그 고통을 더 큰 고통으로 바꿔줘야 하는 수순을 밟아야 하고, 몸은 경직된 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게다가 터진 화라면 좀처럼 주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 어떡해야 하는 가.
이건 확실한 솔루션은 잘 모르겠다.
대부분 미연의 방지를 위해 눈물을 흘린다거나, 흡연을 한다거나, 험담을 한다거나 폭식증이나 거식증에 걸려 뭔가를 엄청나게 먹고, 술을 마시는 등의 방향으로 간다.
그런데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면, 내가 지금 화를 낸다는 건 나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이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타인에게서 보고 듣는 것을 통해 화가 난다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떤 부분에서 화가 나는지, 어떤 상황에서 울화가 치미는 지를 먼저 알아내고, 첫 번째 자존심과 직면하는 순간과 마주하는 방법을 통해 나아가보면 좋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