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죽고 싶은 사람들만 봤으면 하는 글.

정말 죽고 싶은 사람들만 봤으면 하는 글.

과거를 밟아오면서 사연 없는 사람들은 없다. 가슴앓이 한 번 해보지 않은 사람도 없다. 과거는 늘 버거웠고, 미래도 늘 버겁게만 느껴진다. 한 번이라도 내 마음처럼 흘러갔던 적이 없는 인생이라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도 잘 가늠이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살았더니 인생은 엉망진창이고,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괴로운 순간을 직면해야 하고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지도 잘 모르겠다.

정말 죽고 싶은 순간들이 모여 한 해가 흘러갔던 나의 과거를 회상하면 온갖 내 정신에 머무른 것들은 저것들이었다. 분명히 뭔가 잘못된 시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거기서부터 문제였을까 하는 과거를 되짚어본다. 과거를 되짚어보다 보니 더 괴로움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말았고 눈에 보이는 것들은 모든 게 불행과 연관되어 있다. 만약 그런 마음이 든다면 인연이 되어 이 포스팅과도 연결되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현재는 어쨌든 과거가 되기 마련이다. 인간은 역사를 보고 깨달음을 얻는 것처럼 늘 과거에서의 괴로움 속에서 지혜와 혜안을 얻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좀처럼 세상이 긍정적으로 보일까? 또 그것도 아니다. 회복이라는 시간은 정말 길고 언제쯤 그때가 찾아올 지도 좀처럼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별을 한 아픔과는 차원이 다르고 정말 죽고 싶은 생각이 드는 지금 이 순간이 그저 힘들고 숨이 턱턱 막히고 만다. 이것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좀처럼 가늠하기조차 힘이 든다.
정말 지옥은 죽을 용기가 없는 사람이다. 죽음이 절실하면서도 죽을 수 없는 상황이 더 자신을 비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별 볼일 없는 내가 살아봤자 이 세상에 도움조차 되지 않을 텐데 왜 죽지 못하고 있는 걸까. 계속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포켓몬스터 꼬부기.

일단은 꼬부기의 귀여움을 봐서라도 잠깐의 슬픔을 잊었으면 좋겠다.

 

아무튼 정말 힘든 여정을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울증과 무기력증 불안증세는 갈수록 심해지고 좀처럼 활기 있던 내 모습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생각보다 죽음을 원해도 그 이면에는 정말 최선을 다해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는 했다. 내가 원하는 진짜의 삶. 누구에게 상처를 받았든 이런 가해자들은 잘만 사는데 내 진짜의 삶은 영위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원망만 따른다.

뻔한 말이지만 그냥 살기를 부탁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다 먹고살기 힘들다고 한다고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늘 과거를 보내고, 우리는 과거를 더 확대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지만, 우리는 희비가 극명하게 갈리는 순간에도 마치 지나버린 일에 대해서 과장해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두려움 때문에 죽지 않고 살아지는 거라면, 아직 살아가야 할 일이 남아 있고, 나도 그렇게 살아온 결과 행복한 일을 찾아 이렇게 글도 쓰고 작가라는 직업에 다다랐다.
만약 아픔이 계속 이어진다면 그 아픔에 근간이 되는 그 누구든 원망해도 좋다. 원망하고 지칠 때까지 아파해야만 상처가 아문다. 어쨌든 살아야 그다음도 있고, 원망했던 사람들에게 사과도 할 일이 아니겠는가.

죽을 용기가 있다면 당신은 정말 이 아픔과 좌절은 그다지 높지 않은 고비일 뿐이다. 경험이 없을 뿐이지 좋은 성과나 가능성을 보일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죽을 용기로 살아가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아서 여러 방면에서 죽을 용기가 있다는 건, 죽음으로서 쓰기에는 재능낭비일 수 있다. 모든 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니, 이 세상에 나와 힘들게 살아가는 당신에게 대신해서 사과를 드리니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간혹 사람들은 인생의 2회차를 맞이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서 옥상에서 뛰어내리려는 계획을 갖고 막상 옥상에서 뛰어내려고 하는 극단적일 때 눈앞에 서리는 사람들 말이다. 그 대상은 엄마가 될 수도 아빠가 될 수도 있다.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배우자나 자녀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마저도 없는 사람들이 결국 목숨을 끊는데, 목숨을 끊는 것만큼 그 사람의 배경이 안타까울 수가 없다. 그 누구도 그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고, 잡아주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잘 살아보겠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절벽에 서선 죽음이라는 두려움을 맞이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것인지 세상이 개탄스럽고 원망스러울 뿐이다. 만약 그렇게 해서 인생의 2회 차를 살아갔을 때 그 사람에게는 생각보다 많은 축복이 주어진다. 절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삶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자린고비를 겪은 부자들이 그런 테크를 밟아보는 경우가 많다. 당신이 현재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들고, 만약 옥상으로 올라가 뛰어내릴 마음을 갖고 있다는 건, 당신에게 주어진 이 순간을 한 번 넘어보라는 하늘의 뜻이 아닐까란 생각도 어쭙잖게 의견을 내본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시간이 지나면 낫는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다. 아픔도 사랑도 슬픔도.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경험으로 알려주는 무기력과 우울증 극복법.

지난 여러 가지 방면으로 무기력과 우울증에 대한 주제를 몇 차례 다뤘다. 이런 우울한 주제로 포스팅을 계속 다루는 이유는 사람들마다 극복하는 방법이 다르고, 어떤 방면으로 우울증이 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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