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인 집안에서 자란 아이들은 폭력적인 배우자를 만난다.
우리가 함부로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 되는 가장 큰 이유가 훗날 자신의 자식이 그런 폭력적인 배우자를 만나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무리속에서 살아가는 만큼, 아무리 외로움이 없다고 한들 무리속에 속하려는 성질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을 가장 잘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어릴 적 겪었던 폭력 속에서 통제 받으려는 습성이 있다.
훗날 우리 모두가 결혼을 하거나 이성을 만나게 된다면 모두가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점이다.
내 남편이,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 있다던가.
내 아내가, 어머니의 모습을 닮아 있는 경우를 말이다.
우리는 이렇게 가장 자신에게 맞는 배우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 배우자가 바로 나고 자란 부모의 품이라는 것이다.
자식이 배우자를 만날 때 가장 최악인 경우가 바로 폭력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부모와 같은 행동을 하게 되고, 어릴 때는 좀처럼 사춘기며 사회적 인정을 받고 싶은 생각에 초점이 있어 인격적인 부분에서 좀처럼 도태가 되지만, 어느정도 자리가 잡히고 안정감이 생기면, 그때서야 부모에게 물려받은 DNA가 발현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이런 행동을 이해해주지 못하고,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보며 외면하고는 한다. 자식은 그러지 않기를 바라며 말이다.)
더 비극은 폭력적인 집 안에서 자랄 경우 성욕에 눈이 멀거나 실질적으로 본능에 이끌려 결혼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결핍에서 오는 불안전한 상태로 자신에게 가장 욕구적 해소를 부여하기 위함인데, 그 무엇으로도 마음의 결핍이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성욕이나 식욕과 같은 부분에서 왕성하게 발달되고, 이는 폭식과 같은 비만을 불러오거나 성적 노예가 되기 쉬워 자위나 성중독에 쉽게 노출 되고는 한다.
가장 쉽게 물드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그 답을 알고 있다.
쾌락.
먹을 때만큼 행복한 게 없으며, 성관계 만큼 정신을 혼미(물론 긍정적으로)하게 만드는 것이 없다. 그래서 남자는 성욕으로부터 권위를 부여받고, 여성은 식욕으로부터 권위를 부여받는다.
먹는 게 어때서, 성적인 게 어때서 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음식과 성에 노예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몸에는 치명적이고 시간이 지날 수록 도태될 가능성이 정말 높다는 점이다.
그러니 부모가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자식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빠른 개선이 필요하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잠깐의 분노와 게으름으로 인해 자식이 걸어갈 길에 훼방을 놓는 일이 되며, 자식들은 하루 빨리라도 이 점을 파악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 부분은 좀처럼 쉽지 않다.
심적 갈증은 본능과 같은 부분이라 우리가 본능을 좀처럼 쉽게 컨트롤 하지 못하듯이 쾌락에 대한 부분도 쉽게 통제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더 처참한 건, 자식들이 결혼을 하면 난 그러지 않을 거라고 장담해도 평생 이 예민함과 싸워야 하기 때문에 부득이한 화가 중간중간에 나온다는 것이다. 더 비극은 부모에게 배운 그대로를 하는데, 이는 대략 5:5로 나뉘는 듯 보인다.
그래서 폭력적인 집안에서 자란 아이들은 5:5로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부류(이 부류가 결혼을 하면 전자에서 얘기했던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와 결혼을 해도 폭력성을 보이는 부류로 나뉜다.
그러니, 부모가 진 죄는 자식이 받게 되고, 그 자식이 그 것을 감내하면 당신의 자식들이 덕을 본다.
어떻게 삶의 방향을 잡을 지는 당신의 몫이지만, 그 몫을 부담하고 살아야하는 건 당신의 몫이 아니었으니, 어떻게 위로를 해야할 지 모르겠다.
미약하나 힘내라는 말 밖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