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할 때 함부로 선택하지 마라. (격언)
중간중간 포스팅을 하면서 조급함에서도 작게나마 다룬 적이 있다. 인간은 살면서 나이에서 오는 조급함이라던가 연애라던가 직업이라는 부분에라던가 조급함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런 말이 있다.
멀리 보지 않으면 늘 가까이에 근심이 있다.
손웅정 감독 님이 인터뷰로도 나온 이 말은 생각보다 어느정도 세상을 살아본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20대일 나에게 이 말을 했다면 머리로만 이해했지 가슴에 와닿지는 못했을 것이다. 현재도 많은 이들에게 좋은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 조언을 많이 하지만 누구 하나 쉽게 이 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왜냐하면 과거에서부터 자신을 통제할 수 있을만한 마음의 힘을 키워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급함.
쉽게 나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우리는 그 나이대에 해야하는 일들이 있다. 예를 들어서 20대 초반에는 남자들은 군대를 가야 하고 군대를 전역하면 대학을 가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등 보편적인 루틴과 같다.
그래서 스무살에서부터 적어도 스물여섯까지는 공부만 하다가 직장을 들어가게 되는데 직장을 들어가기란 지금 같은 시대에는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 나이대에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못하면 조급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 조급함은 나 자신에게서 온다기보다는 비교 대상에서 오는 경우가 많고 남들 모두 취직하는 것 같아서다.
일단 뭐라도 해야
돈이라도 벌어야.
연애를 해야
내가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고등학교 때 연애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라. 왜냐하면 대학가면 예쁜 여자가 널렸으니까.
개뿔 대학가면 만신창이의 얼굴들을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게으름 덩어리들과 결혼하여 인생에 망조가 들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는 시기가 반드시 온다.
당장 내가 급급해서 뭔가를 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는 반드시 따르기 마련이다.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갔던 아니던 회사에 입사하면 세상 걱정이 모두 사라질 것 같지만 막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냐 하면 바로 뭔가 조급할 때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일은 해결했지만 앞으로 벌어질 일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어떻게 서든 헌신을 하고 직장에 뼈를 묻을 기세지만 그런 일조차도 일어나지 않는다. 반드시 6개월 안에 퇴사할 가능성이 현저히 높다.
근시안적인 선택과 결정은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배고플 때 편의점을 가면 내가 먹고 싶은 것들을 사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산다.
외로울 때 연애를 하면 그 외로움을 달래줄 사람이 나타날 것 같지만 결국 몸만 탐하다가 끝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외로울 때 헌신하면 정말 말그대로 헌신짝이 된다.
사랑은 반드시 내가 행복할 때, 내가 무언가를 가슴에 담을 수 있는 여유와 상황이 주어질 때 해야 내리막이 오더라도 그 마음을 유지할 힘이 생긴다. 하지만 내가 괴롭고 외로울 때 하면 이미 마음이 지쳐 있기 때문에 조금만 틀어지면 관계가 쉽게 틀어지거나 깨질 가능성이 높다. 만약에 애가 생겼다면 그런 불행한 관계를 평생 끌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삶이 행복할까?
왜 이런 현상 일어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면, 앞으로 겪어야할 아픔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클지도 모른다는 개인적 생각이다.
그만큼 우리는 멀리볼 줄 알아야 한다.
조급할 때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줄도 알아야 하고 내가 직장을 들어가기 위해서 1년이란 시간을 준비한다면 다시 그 시간을 점검해 보고 내가 1년 동안 부족할 것 같다면 더 시간을 늘려 취직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을 늘리는 것만이 방법이 될 수는 없다. 시간을 좁히는 방법도 있다. 예를 든다면 내가 몸으로 실행할 수 있는 방안이다. 일단 부딪혀 보고 그 일을 배우는 것이다. 그렇게 인턴이나 알바로 들어가 정규직 전환을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자신이 서른이라고 한다면 29살의 자신을 기억해봐라.
무언가를 위해서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데 29과 30의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다.
30과 31의 차이 역시 과거를 돌아봤을 때 큰 변화가 없다.
변화가 없다면 거기서 오는 후회가 있을 수도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인생이 크게 바뀌거나 하지도 않는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바로 저기 멀리 놓인 내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일단 당장 오늘 주어진 몫을 해내다보면 그 하루가 주는 달콤함이 단기적 목표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인생은 생각보다 짧다. 그렇다고 짧은 인생을 짧은 목표로 정해서 간다고 하면 짧은 시간 내내 불안함만 증폭된 채로 걸어갈 거리도 달려갈 가능성이 높다.
사람에게 때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 때가 반드시 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불행에서 오는 깨달음이 훗날 인생을 더 윤택하게 해 줄 수 있기 때문인데, 우리는 불행을 근시안적으로 바라봤을 때 나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부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가 공부를 한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얻어지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그렇지 않다. 인간은 휴식이라는 것을 하기 마련인데 우리는 경쟁사회에서 살다보니까 쉬지 않고 공부를 한다. 집중도 되지 않는 머리를 가지고 앉아만 있으면 만사 해결 될 거라는 마음가짐으로 말이다.
왜 이런 현상을 보일까?
바로 내가 여기에 일단 앉아 있으면 뭐라도 했다는 안도감에서다. 그런데 이런 패턴이 오히려 미래지향적으로 바라봤을 때 여러방면으로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방해는 무엇일까?
바로 번아웃이다.
정작 힘차게 달려야할 때 우리는 이미 기력을 모두 소진해 도태되고 만다.
처음에는 무조건 즐기면서 해야 된다. 즐길 수 있을 때가 발전을 가장 많이 할 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재능을 보여줘야 할 때가 오는데 그때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쏟아부어야만 벨런스가 유지된다.
그런데 전자들은 이미 너무 많은 에너지를 초반에 갖다 부어서 번아웃에 그만 허우적대고 만다.
그럼 어떤 순간이 오는지 아는가?
고작 잠깐의 조급함 하나로 선택된 나의 삶이.
예를 들어 장기적 경력 (5년 이상이라 가정할 경우) 다시 걸음마부터 배워야 하는 패턴을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이미 대학에서도 직장에서도 어느정도 배웠는데 번아웃으로 인해 다시 되돌아간다고 하면 그 5년이 증발해 버린다는 것이다.
즐기는 자가 성공한다 이런 말이 아니다.
무언가를 즐길 수 있는 상황은 바로 초반이라는 것이다.
중반부터 나의 재능을 선보여야 할 때는 더 이상 즐길 수가 없다.
그땐 책임감의 승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조급함이 주는 순간에 무작정 급한 선택을 하기보다는 한 발 떨어져서 얼마나 시간이 필요하고, 어떤 이성을 만나야 하며 어떤 사람과 영원을 약속해야 하는지, 그 사람과 함께 하면 앞으로 남은 60년의 인생이 행복할지를 먼저 보고 고칠 부분이 있는지 고쳐야 할 부분이 있는지 어떻게 그 사람에게 맞춰가야 하는지 등의 루션이 나온다는 것이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6개월 더 한다고 당신의 인생이 망하지 않고, 몇 개월 더 이성으로 고민하다고 해서 당신의 인생이 망하지 않는다. 원래 인생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망하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