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만에 깨달은 행복의 진실
오늘은 행복의 진실에 대해서 설명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개인주의화로 발전하면서 더이상 나에게 터지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데, 왜 이렇게 사는 게 불행하고, 힘들기만 하고, 박복하기만 한지 참 아이러니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데 젊을 때는 누군가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자기 효능감, 즉 자기가 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기 때문에 타인의 말을 듣지 않고, 자존심이라고 하면 그 억척같은 자존심에 자신을 희생양으로 갈아넣는데만 최선을 다하는 게 실질적으로 젊은 사람들에게 흔히 일어난다.
첫 번째
경험.
살다보면, 젊음은 사서라도 하는 것이 좋다. 라는 말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고생을 사서할까?라는 의문이 든다면, 인간에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이 들고, 그래서 나이가 들면, 젊음, 건강과 같은 부분에 대해서 깨달음을 얻고는 한다.
그리고 이 경험이 타인보다 보편적으로 적을 때, 대체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도태되고, 경쟁에서 밀리며,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하지 않고, 계속해서 지옥의 군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는 한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사서 고생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사서 고생하는 사람들에 비해 나은 삶을 바라지는 말라.
이건 "난 왜 이렇게 불행할까?"라는 생각보다는
당신이 "왜 불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와 일맥상통하다고 보면 된다.
당신이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면, 불행 속에 행복이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한다.
행복의 핵심은 바로 두 번째에 있다
행복하려면 만족의 딱 70퍼센트를 유지해야 한다.
인간은 심리적으로 메슬로우 욕구에 따르면 인정의 욕구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한 번쯤 돈을 벌 기회가 온다. 20대에는 혈기왕성해서 월급으로 한 번에 500만 원도 벌어볼 수 있고, 머리가 영리하거나 행동이 영리하면, 1000만 원 이상을 벌 기회도 주어지고 실질적으로 그렇게 벌어볼 수도 있다.
그럼 인간은 생각한다.
지금 내가 1000만 원을 벌었다는 것과 내가 노력한 시간의 값이 1000만 원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보상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구매한다.
남자의 경우라면, 자동차가 될 수 있고, 여성의 경우라면 명품 백이 될 수도 있다.
모두 고가의 제품을 구매할 것이고, 우리는 여기서 행복감을 느낀다.
행복에 대한 어느 정도 감이 오는가?
만약 내가 일을 하지 않고 1000만 원이 있었다면, 당신은 아무렇지 않게 가방과 차를 구매했을 것이다. (천 만원으로 자동차를 어떻게 사? 라고 생각한 사람이라면 당신이 불행은 적어도 10년은 계속 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당신의 만족감은 어디서 오는 지를 알아야 한다. 일단은 차량과 가방을 구매했으니, 일시적으로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 것을 얻는 과정의 행복이 없기 때문에 금방 즐거웠던 마음이 식어버린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모든 제품을 일시불로 사는 경향이 있다. 34세까지 나이를 들면서, 한 번도 신용카드를 만들어본 적이 없고, 사업을 통해 돈을 많이 벌어도 봤으며 망해도 봤다. 그리고 망했을 때 망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좌절이 당시에는 죽을 만큼 힘들었어도, 그 과거가 빨리 내게 와주었다는 것에 대해서 지금은 너무나 감사하고 있다.
왜냐하면, 28살에 사업 실패와 34세의 사업 실패는 나이를 들어본 사람들이라면 그 간격을 뼈져리게 느낄 것이다.
이젠 눈치를 챘는가?
즉 우리는 뭔가를 제대로 갖기 전 과정의 단계가 약 30퍼센트는 필요하단 말이다.
그냥 했을 때 그냥 뭔가가 손에 쥐어지면, 행복은 있더라도 성취감이 없다. 우리가 내 자신이 나를 인정하고 받는 것은, 가벼운 농담의 칭찬이 아니라, 내 노력을 내가 알고, 내 노력을 타인이 알아줄 때 진짜 행복하다는 것이다.
앉아서 뭔가가 뚝딱 완성되고 이루어지면 그 행복은 더 큰 행복을 쫓게 되고, 그래서 많이 가진 사람일 수록 행복보다는 쾌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현저히 높다는 것이다.
우리는 움직이는 데에도 동기가 필요하듯이 행복하는 과정에서도 동기가 반드시 필요한 게 사실이다.
당신이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뭔가를 얻고자하는 것은 더 큰 쾌락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말이 된다는 것이다.
더 쉽게 얘기하면, 자동차를 갖고 싶다면, 1000만 원짜리의 자동차를 갖기 위해 700만 원의 돈이 수중에 있으면 된다는 말이다. 1000만 원 짜리 가방이 갖고 싶다면, 내 수중에 똑같이 700만 원의 금액이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근데 많은 사람들이 실수를 하는 게 여기서 신용카드를 긁어 1000만 원짜리를 할부 36개월로 끊는데, 이 행복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고, 노력이 없기 때문에 여기서 오는 행복은 금방 식어버리기 마련이다. 내가 30퍼센트를 채우기 위해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일시불로 뭔가를 구매할 때와, 잔고가 100만 원 밖에 없는데 1000만 원짜리의 가방을 사는 것.
어느 쪽이 더 행복감이 크겠는가.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사랑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완벽한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집 있는 남자, 차 있는 남자, 안정감이 있는 남자 등 말이다. 그런데 그런 남자를 만나면, 더 큰 쾌락을 얻고 싶어하고, 더 큰 안정감을 얻기 위해 무리수를 둘 뿐이지, 작은 변화는 오지 않는다. 오히려 더 큰 변화가 오는데, 이는 당신의 배우자가 내려가는 단계로 접어드는 것 말고는 달리 변화는 없다.
우리는 부족한 사람들이 만나 부족한 점을 채워가는 재미와 행복으로 삶을 임한다면, 마음에 도사리는 불행은 그다지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는 이 사실을 34년 만에 깨달았고, 지금은 마음이 몹시나 안정감을 갖고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통해 자신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찾고, 그 마음에 이 공식을 대입해 본다면, 꾀나 이전의 삶보다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행복한 삶을 영위할 거라고 나는 자부한다.